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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3월11일,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할 만큼,분명히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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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Media Creator Realname
김 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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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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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Title
2011년3월11일
English Description
2011년3월11일,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할 만큼,분명히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딸(사립고등학교 1학년재학중)은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했고, 남편은 전날부터 후꾸오까에 출장중이었으며 그날이 바로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점심 식사후 혼자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으로 심한 진동을 느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지진을 경험해 봤지만 그날처럼 심한 진동은 처음이었다. 2층(7층건물)에서 심하게 진동을 느낀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으며 동시에 텔레비전 화면이 비상 상태 화면으로 바뀌었다.
지진이 멈추기가 무섭게 화면이 바뀐 것에 역시 일본이구나 라고 감탄할만큼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조금의 여유가 있었던 것같다. 15분인지 20분후 다시 한번, 처음보다 심하게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식탁밑으로 들어가서 지진이 끝날 때까지 공포를 참아내야 했다.
진동과 함께 가구가 움직이는 소리, 삐걱삐걱 문이 움직이는 소리...
지금도 그 소리들이 기묘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지진이 끝난 후부터 텔레비젼을 통해 나오는 영상들은 믿기 어려운 상황들이었다. 급기야 공포를 참기 힘들어 밖으로 뛰어나가 맨션 관리인에게 피난 장소 등,여러가지 정보를 알아보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나와는 달리 일본 사람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피난할 물건들을 챙기면서 여기 저기 연락을 해보았지만, 휴대전화 집전화 모두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 되다가 한국의 부모형제, 친척들과도 차츰 연락이 되었고, 남편은 운좋게 하네다 공항에 비행기가 창륙할 수 있었는데 동경과 동경 외곽 전철이 모두 마비된 상태여서 공항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딸의 학교는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평상시부터 준비된 규칙대로 보호자가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오지 못하면 상태가 안정되고, 전철이 다닐 때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공항, 딸은 학교, 3식구가 따로 따로 여진이 계속되는 밤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불안하게 보내야만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이 되서 가스,수도 등도 마비되었다고 하는데 다행이도 우리 맨션은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혼자서 여진의 공포를 느끼면서 암흑 속에서 견뎌내지 못했을 것 같다.
밤새 텔레비젼을 보면서 여러 지역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일본 사람들의 침착한 행동, 인내력, 방송의 스피드, 냉철함에는 감동을 넘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 였다. 특히 나와 주위 사람들의 온도차이는 나를 혼동시켰다.
결국 한숨도 못자고,딸과 남편은 전철이 움직이면서 이른 아침 각자 집에 올 수 있었다.
딸은 그 날부터 조금 빠른 봄방학이 시작되었고, 지진보다 더 무서운,원폭이라는 생각치도 못한 불안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쟁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이런 생활이 전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는 물건이 줄었고, 비상 식품을 준비했으며, 방사능이 무서워서 환기는 물론 부엌의 환풍기도 돌릴 수 없어서 요리를 안하고, 사서 먹거나 인스턴트로 해결했다.
불안해서인지 남편과 딸이 자는 밤에는 같이 자지 못하고 낮에 누군가가 깨어 있을 때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한국 뉴스를 보면 더욱 불안해졌고 일본에서 살고 있던 한국 사람들이 귀국한다는 소식과 함께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돌아오라는 전화에 회사일로 돌아갈 수 없는 남편을 두고, 딸과 돌아가거나 딸만 보낼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절대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가지도 않을 것이며, 아빠를 혼자 두고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어쩜 딸의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강도가 센 여진도 계속되고 방사능 문제로 불안해 하고 무서워하는 나를 언제나 딸은 챙겨주고 유모어를 섞어 격려해 주곤 했다.
차츰 정신적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가족들과 주위에 있는 일본 친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일본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지 못 했으며, 멀지않아 다시 지진이 일어난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면서 준비하는 자세가 나에게는 허무한 일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피하지 않는 강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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